태어나서 한번도 고기를 먹지 않은 자, 나에게 돌을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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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프리카의 한 사바나 지역. 하이에나 한 무리가 얼룩말을 사냥한다. 발빠른 대부분의 얼룩말을 도망쳤지만 지능적인 하이에나의 목표가 된 한 어린 얼룩말은 결국 잡히고 만다. 덩치에서 열세인 하이에나들은 얼룩말을 단번에 제압할 힘이 없다. 따라서 숨통도 끊지 못한다. 그냥 주둥이가 닿는곳을 물어 뜯을 뿐이다. 한동안 뛰어다니며 저항하던 얼룩말은 더 이상 저항이 소용없음을 느끼고 자리에 눕는다. 하이에나들은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식사시간의 시작에 얼룩말에게 죽을 틈 도 주지 않은 채 게걸스럽게 연한 부위부터 뜯어 먹는다. 조금씩 뜯겨 나가는 살점과 피 덕분에 얼룩말은 자신의 몸이 점점 줄어 드는 것을 느끼고 그와 함께 생명과 의식또한 작아져감을 느낀다. 마지막 남은 의식으로 희번득 대는 눈 속으로, 멀리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최후를 지켜보는 어미 얼룩말이 들어온다.

2. 시골의 한 도살장. 수백마리의 소가 죽음을 기다린다. 그 중 한 소가 긴 통로를 지나 어떤 방에 도착한다. 무언가 불안한 느낌이 들지만 그게 뭔지는 잘 모른다. 그 순간 어떤 쇠막대기가 자신의 정수리를 겨누고 있음을 느낀다. 작은 쇠공이 빠르게 쇠막대기에서 발사 되고 소의 이마를 관통하지만 소는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는 암흑. 그리고 그 뒤에는 오로지 가장 손쉬운 최후를 맞기 위해 일생을 2미터길이의 방에서 앉지도 못하고 살아온 수백마리의 소들이 작은 쇠공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다. 아니, 수만마리 수천만 마리가 기다리고 있다.

3. 또 다시 아프리카. 세살쯤 되어보이는 흑인 아이가 흙바닥에 앉아있다. 아주 오래 굶었는지 가시같은 팔과 다리가 몸통에 매달려 있고 어울리지 않는 볼록한 배만 도드라져 보인다. 아이는 파리를 쫓을 힘드 없는지 수많은 파리들이 아이의 얼굴 위를 기어다닌다. 그리고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독수리 한마리가 앉아서 아이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4. 코스타리카의 한 전시장, 개 한마리가 벽에 묶여있다. 멀찌감치 밥그릇이 있지만 줄 길이가 충분하지 않아 밥그릇에 닿진 않는다. 개는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서서히 굶어 죽어간다.

당신은 이중에 가장 잔인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나에게는 놀라운 사실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의 세개에 대해서는 별 의견이 없지만 네번째 사건에 대해서는 격렬한 반감을 드러냈다. 역사상 단 한번 일어난 한마리의 가여운 개의 죽음과, 매일매일 벌어지는 수십만 마리의 학살의 승부는 한마리 개의 압승으로 결론을 맺은 것이다. 왜일까?

인간은 필연적으로 다른 개체의 죽음 위에서 밖에 살 수 없는 동물이다. 일단 잡식성이지만 일반적으로 고기를 더 좋아하고,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남을 죽일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살을 잘라 먹는 수 도 있겠지만 -만화에는 그런 사람도 등장하긴 하지만- 위대한 김구 선생님 조차도 그러한 일은 포기했다. 남을 죽이는 일을 죄악으로 생각해서 채식만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긴하다. 하지만 그래서? 식물은 생명체가 아닌가? 어떤 귤나무가 있다. 그 귤나무의 삶은 목적은 단 하나 열매를 맺어 씨를 뿌리기 위함이다 귤나무의 삶은 열매 맺는데 최적화 돼있고 그하나의 목표를 위해 1년을 살아간다. 하지만 매번 사람은 귤을 아무 대가 없이 맺는대로 냉큼 따가고 귤나무는 또 열심히 내년에 약탈당할 열매를 맺을 준비를한다. 이것은 잔인하지 않은가?

나는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비방할 생각이 없다. 나도 고기를 무척 좋아하며, 고기를 먹으면서 어떤 종류의 죄책감도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인간이기에 운명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잔혹성을 부정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월드컵 때 하루 평균 치킨 주문량이 100만 마리가 넘었단다. 다시말하면 매일매일 한국에서만 100만마리 이상의 닭이 죽음을 당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잔혹 행위를 무시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영혼의 고귀함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내가 저지르지 않은 잔혹 행위에는 가차없는 비방을 가한다. 한마리의 개를 죽인 코스타리카의 예술가 같은 사람을. 먹는 행위는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괜찮고 예술은 안된다? 먹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기적인 것 아닌가? 비교하자면 오히려 예술이 이타적 가치를 품고있지 않나? 좀 자기 중심적이고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다시 얘기하지만, 나는 고기를 먹는 사람의 잔혹성을 비방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스스로의 잔혹성을 그렇게 부정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앞서 말했지만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잔혹한 동물이다. 하이에나 처럼.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PETA(동물을 인도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지지한다.


by 봉봉 | 2008/02/01 15:26 | Category 0 | 트랙백(3) | 핑백(1) | 덧글(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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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초록불의 잡학다식 at 2008/02/01 21:50

제목 : 돌은 던지고 싶지 않습니다
태어나서 한번도 고기를 먹지 않은 자, 나에게 돌을 던져라돌을 던질 이유야 없겠지요. 글쓴 분은 개가 굶어죽는 것이 안타깝다면, 다른 행위도 안타까워 하라라는 뜻으로 쓰신 것이라 생각합니다.맹자 양혜왕 (상)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제법 유명한 말이어서 한 번쯤 들어보았을 말입니다.제선왕이 물었다."덕망이 어떠해야 가히 왕이 될 수 있습니까?"맹자가 대답했다."백성들을잘 보호하면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과인도 백성을 잘 ......more

Tracked from 기타등등이란 바른생활 .. at 2008/02/02 04:41

제목 : 나로서는 결론내리기도 쉽지 않을 일이지만
태어나서 한번도 고기를 먹지 않은 자, 나에게 돌을 던져라이 글을 읽고 오밤중에 잠도 안 와서 한 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사람은 무엇에 잔인함을 느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생명이 고통을 느끼고 있을 때 불쌍함을 느끼고 그 불쌍함이 다른 생명체에 의해 자행될 때 잔인함을 느낍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오로지 잡아먹히기 위한 삶을 사는 가축의 죽음이 이 개의 죽음만큼 잔혹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n......more

Tracked from [風]- 바람이 부는곳 at 2008/02/02 06:51

제목 : 뭐랄까 이건 생각의 차이라지만...
태어나서 한번도 고기를 먹지 않은 자, 나에게 돌을 던져라저 블로그 주인장님의 생각이 잘못된것인지 아니면 내 생각이 잘못된것인지 잘 모르겠군요.간단한게 생각해서 내가 살기위해 어떤 생물을 죽이는 것과, 내가 나의 생각과 사상을 보여주기위해 어떤 생물을 죽이는 것이 동일취급 받을수 있는걸까요. 예술은 그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내 느낌, 내 가치관나의 모든것을 표현하는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던간에 ......more

Linked at in the Park : 예술.. at 2008/02/02 13:36

... 개가 굶어죽는게 예술작품?윗 글에 관한 다른 트랙백. 여기. -예술이란 이러자고 존재하는게 아니다. 잔인하고 말고를 떠나서, 이런 식으로 예술을 모독당하는것이 참으로 불쾌하다. 우리는 아름다운것을 나름의 방법으로 지킬 필요 ... more

Commented by 종화 at 2008/02/01 20:15
모피코트 한 벌을 만드는 데 죽는 밍크의 수, 악어가죽 지갑 한 벌을 만드는 데 죽는 악어... 그리고 그 것들을 아름답다고 바라보고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원을 주고 사가는 사람들..
하지만 그것들의 죽음이 자기 눈 밖에서 이루어지니 애써 외면하고 있는게 우리 현실이죠..
정작 눈앞에서 귀여운 (혹은 불쌍하게 생긴) 생물 하나가 죽어가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것에는 분개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타의에 의해 태어나 타의에 의해 사육되어 죽임을 당한 동물들에 대해서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설령 신경 쓰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애써 미화하곤 하죠..
뭐, 그렇다고는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동물을 죽이는 행위가 정당화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고기를 얻기 위해서, 가죽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죽음이라는 것 자체가 가져오는 잔인함과 무자비함은 일단, 그 생물에게 불쌍함을 느끼는 것 보다는 보는 사람들에게 불쾌감과 잊고 있었던 생물의 죽음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떠올리게 해 주는 것이니까요..
하긴, 그걸 예술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정당화 될 수 있겠죠
Commented by 그란덴 at 2008/02/01 20:27
간단합니다. 인간이 고기를 먹는건 생존과 관계있는 식욕충족이 목적이죠,


모피코트나 지갑이나 기타등등은 그 이상의 사치이고요,



생존을 위해서 해치는것을 정당방위로도 보지 않나요?
Commented by 쑴쑴쑴 at 2008/02/01 21:12
다른 종(species)을 먹는것이 잔혹한 일이라고 볼 순 없습니다.
그리고 간을 보고 요리를 해서 먹는 것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짐승들에게 사람이 먹는 음식을 주면 환장하죠.
따라서 하나의 종이 다른 하나의 종을 섭취(?)하는 과정은 오히려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것을 잔혹성으로 묘사하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Commented by 사람해요 at 2008/02/01 21:29
1,2,3,4번의 예시를 동등한 위치에서 비교할 수 있는건가요ㅠ
Commented by blitz고양이 at 2008/02/01 23:44
고기먹기 위해 집승을 잡는 것과 단지 자기 작품을 위해 개를 굶겨 죽이는 것하고 비교하는 것은 억지죠.
굳이 비교한다고 해도 둘 사이에 잔인함의 차이를 정말 모르셔서 이런 글을 쓰시는 것은 아니겠죠?
Commented by 나타라시바 at 2008/02/02 00:18
뭐 이런 의견이 나오리라고도 생각했지만 사실 이것도 아주 이전부터 생각해봤던 문제지요.

아마 인간의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인 학문인 과학과 언제나 주관적이고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예술의 차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 동물의 생명을 죽여서 육식을 하는 행위의 가치는 과학적으로 입증이 가능합니다. 열량을 더욱 효율적으로 섭취할 수 있고 종종 어떤 고기로만 섭취 가능한 영양소로 있기 때문에 충분히 보편적인 이익을 얻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육식 행위같은 것도 과도한 살상이라면 질타를 받지요. 만약 누군가가 한 끼 식사를 위해 소 100 마리를 죽이고 허벅지살만 먹은 다음 나머지는 싹 버린다면 누구나 비난할 것입니다. 자기 혼자 식사 하는데에 소 100마리가 희생할 필요성이 현저히 낮다는 것은 윤리적 측면 이전에 과학적으로도 자명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예술은 상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분야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추구하는 어떤 예술적 가치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고요. 헌데 그렇게 해낼지도 못할지도 모르는 가변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매우 보편적으로 요구하는 과학적 성과 - 장기 배양을 위한 유전자 조작 등 - 를 얻으려 할 때도 함부로 다루지 않는 생명을 극단적으로 다루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요? 이건 윤리적 차원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아주 철저하게 유물론적인 형평성 차원에서 봐도 전혀 이득이 없이 리스크만 떠안는 어리석인 짓입니다.
만약 문제제기를 하려면 차라리 현재 인간이 육식을 위해 죽이는 동물들의 생명과 그로서 얻는 영양소 섭취의 손익 비례가 옳은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던져야겠지요. (현대인의 지나친 육식 지향에 관한 문제제기라던가, 동물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방안에 대한 논의 등등) 허나 예술과 비교하는 것은 전혀 옳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나타라시바 at 2008/02/02 01:10
위에서 얘기하신 사례 1, 2, 3 번에 대해서도 코멘트를 하자면


1번은 전혀 문제될 일이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이에나의 육식 행위는 그 종의 생명 유지, 그리고 생태계 유지에 필수적인 먹이사슬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거니까요. 먹이사슬의 균형이 깨졌을 때의 얼마나 엄청난 악영향이 오는지는 우리 인간이 경험적으로도 확인한 바가 있으므로 과학적 사실 중에서도 아주 명백한 과학적 사실에 속하겠죠.

2번이 비난받기 위해서는 도살하는 사람들이 일부러 소의 급소가 아닌 곳에 총을 맞춰고통스럽게 죽도록 하거나 아니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많은 소를 죽인다고 판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소를 죽일 때 총으로 한 번에 죽이는 것은 먹이사슬의 유지를 위해 하는 행위치고는 아주 관대한 편에 속하죠 (세상 어느 동물이 다른 동물을 저렇게 편하게 죽여줄까요)

그리고 3번의 경우는 누구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사례인지 모르겠는데… 만약 죽어가는 아이를 바라보는 독수리가 중심이라면 그 녀석 역시 문제될 이유는 없습니다. 뭐 인간이든 소든 고기를 먹고 싶어하는 것이 그 녀석들의 습성이니 1번과 같은 이유에서 비난받을 이유는 없겠죠. 참고로 저 장면을 찍어올린 어떤 사진 작가는 이미 호되게 비난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진을 찍기 전에 아이를 먼저 안전하게 지켰어야 한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죠. (다만 구체적인 상황을 볼 때 작가가 그렇게 비난받을 필요는 없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중요한 건 아니니 넘어갑시다)


이렇듯 1, 2, 3번은 애당초 문제될 일이 없는 일들이며, 그러므로 그것들을 4번과 동등한 사례로 두어 사람들의 이중성을 고발하고자 하는 시도는 매우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위의 어떤 분이 말씀하셨듯이 처음부터 '잔인하다' 는 수식어의 뜻을 잘못 적용해서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현상까지도 잔인한 일로 만들어 버리셨군요. '보기 싫다' 는 '잔인하다' 의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하이에나가 사슴을 생으로 뜯어먹는 것도 당연히 보기 싫은 광경이기는 하겠지만,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이유가 있는 바 거기다 잔인함의 잣대를 적용시킬 수는 없죠. 외과의사가 수술을 위해 사람의 몸을 베는 장면이 직접 보기는 싫지만 의료적 가치가 있기 때문에 잔인한 일은 아닌 것과 비슷한 예입니다.
Commented by ExtraD at 2008/02/02 01:59
도축장의 도살장면을 촬영해서 보여주면 예술영화가 되겠군요.
Commented at 2008/02/02 02:0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바람君 at 2008/02/02 02:22
글쌔요... 비록 글쓴이의 예시는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만, 무턱대고 예술의 잔혹성을 비방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주관적인 문제를 너무 쉽게쉽게 생각해서는 안되겠죠. 문화나 예술이 비슷한 주관성을 소유하고 있다면 지구촌의 어느 나라는 우리나라의 개식용문제를 지구상에 둘도없는 죄악으로 볼지도 모를 일입니다. (따지고 보면 개 식용문제도 이와 비슷한 논지가 되지 않을까 하군요.) 그리고 또하나, 예술은 예술의 잣대로 재는편이 속편합니다. 너무나 다양한 잣대가 존재하는 예술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도끝도 없는것이 이러한 논쟁이죠. 비슷한 걸로는 종교문제도 있다죠, 아마 ㄱ-
Commented by 나인테일 at 2008/02/02 02:23
불교에선 원칙적으로 살생을 금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현실에서 적용되기는 굉장히 힘들기 때문에 '살생유택'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살생유택. 이 말이 뭔지 이해 잘 안 되시는지요.
Commented by 구민 at 2008/02/02 02:56
ExtraD/ 그러고보니까 그런 예술영화가 있습니다. <짐승의 피>라고...
http://djuna.cine21.com/movies/blood_of_the_beasts.html
갑자기 생각나길래...
Commented by 사막여우 at 2008/02/02 02:58
이건 무슨 개짖는 소리랍니까?
Commented by 리볼버 at 2008/02/02 03:10
글쓴이가 예시로 들어준 1~3 내용들은 전부 먹이 사슬에 관련된 얘기입니다. 잔혹성과는 별개의 문제가 되겠죠. 자연의 섭리니까요. 살아남기위해 죽이는것과 살아가는것과 전혀 무관하게 멀쩡한 생명을 죽이는것. 두가지중 어떤게 더 잔인하다고 보십니까.

단순히 개 한마리가 죽은것 때문에 이러는거라고 보이시나요. 생명을 너무 하찮게 생각하고 윤리적이지 못하기때문에 그러는것이죠. 잔인하기로 따지자면 4번이 가장 잔인한거 아니던가요. 먹이사슬과 윤리를 비교한다는것 자체가 애시당초 말이 안되는 얘기죠.

이건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진 잔인한 생명윤리모독이죠.
대체 눈앞에서 멀쩡히 살아있는 동물을 굶겨죽이는게 무슨 예술이라는건지 모르겠군요. 단지 동물학대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습니다.
Commented by 휘。 at 2008/02/02 03:10
나타라시바님 말씀에 동강함고 갑니다. 모순된 예시를 드셨네요. 1번은 생태계에서 일어나고있는 수많은 '생존을 위한 사냥' 이고 2번은 '좀 더 인도적으로 도축하는 방법' 으로 토론될 문제이며 '3번은 안타까운 현실,세계 기아를 어떻게 해결하나' 에 적합한 예시입니다. 1,2,3번중 어느것 하나 인간의 예술을 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상황이 아니란 이야기입니다.(그렇다고 2,3번이 결코 가볍게 지나쳐도 괜찮은 문제라는건 아닙니다. 다만 이번 전시회의 개 문제와는 전혀 다른 줄기의 문제인거죠.) 개를 굶겨죽이는 예술뿐만 아니라 먹는 행위 역시 잔인한 짓이며 인간은 잔인한 동물이다 라는 말씀을 하시고 싶은 것 같은데, 인간이 잔인한 동물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고기를 먹는 것도, 야채를 먹는 것도 결국은 다른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이니 감사하고 살아야겠죠.(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가 어렵습니다만) 하지만 가장 중요한건 어느 것이 더 잔인하냐 덜 잔인하냐가 비교하는게 아니라 무언가가 비인도적이라면 문제의식을 갖고 개선할 생각을 해야지 '그거 알아? 그 문제 뿐만이 아니라 너희들이 하고 있는 이러이러한 짓도 잔인해' 라고 별개의 문제를 끌어다 붙일게 아니란 겁니다. 별개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의 방식대로 안타까워하고 차근히 풀어나갈 일이고 코스타리카 전시회의 굶어죽어가는 개는 인간의 예술이라는 이름아래 잔인한 방법으로 죽어가는 생명에 대한 문제입니다. 지금 많은 분들이 분노하시는 이유의 본질을 흐리지 마셨으면 합니다.
Commented by 봉봉 at 2008/02/02 03:49
갑자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일단 당황스럽습니다. 아시다시피 소외된 블로그라 이렇게 많은 분들이 보실줄 모르고 막 쓴 글이라 짧은 식견과 엉성한 표현으로 낚시수준 글이 되어버린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답변 잘 읽었으며 비유 또한 적절치 않았다는 점 인정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납득할 수 없는 점은 고기를 먹고싶다는 욕망과 예술활동을 하고싶다는 욕망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자연의 섭리라면 예술을 하고자 하는 욕망은 자연의 섭리가 아닌지, 자연의 섭리가 항상 정당화 된다면 외과 수술도 자연의 섭리에 해당하게 되는지 에 대한 의문입니다. 또한, 왜 남에게 보여지는 죽음이 보이지 않는 죽음보다 더 악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논란이 된 퍼포먼스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예술적 가치와 제 논의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점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은 단지 인간-또는 동물-의 욕망에 대한 논의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류의 글이 그렇듯이 토론이라기 보다는 분란에 가까운 양상이 되기 십상이기때문에 글을 수정할까 삭제할까도 생각해보았는데 답글을 달아주신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되어 원문 그대로 놓아둡니다. 따라서 글이 너무 자극적이고 어설프다고 불쾌해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시한번 관심에 감사드리며 혼란을 드린점 미안합니다.
Commented by 곰개 at 2008/02/02 04:05
비유가 달랐다면 또 다른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동의할 수가 없네요. 1,2,3번은 모두 생존을 위해, 먹기 위한 죽음이지만 4번은 개를 먹으려고 죽이는게 아니라 예술을 위해 고통스럽게 배를 곪아가며, 닿을 수 없는 먹이 그릇을 바라보며 죽어가는 과정을 전시한 것이라 사람들이 많이 분노하는 것 아닐까요. 매일 수없이 도살되는 닭, 돼지, 소 등의 가축들의 경우가 잔인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전시된 개와 비교하자면 가축들은 최소한 섭취됩니다. 자연의 섭리에 훨씬 가깝지만, 우선 인간의 개체수가 겉잡을 수 없기 때문에 좀 파괴적이죠. 하지만 이건 다른 주제이고^^;
먹는 것 자체는 한 개체가 살기 위해 취하는 1차적인 수단 중 하나이고, 거기에 더해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선호도나 혹은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이 그것밖에 없는거죠. 인간의 경우 고기와 채소를 골고루 섭취하니 약간은 개인 선호쪽에 기울겠죠. 예술활동은 인간의 1차적인 생존욕구가 모두 채워진 후 생겨난 부가적인 욕구쯤 되겠죠. 고기를 먹고 싶은 욕망과 예술활동을 하고 싶은 욕망은 근본적으로 많이 다르다고 봅니다ㅜㅜ; 예술은 자연의 섭리라기 보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투자하고 남는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생겨난, 생존과는 상관 없는 부가적인 활동입니다. 물론 요즘은 '직업'으로서 생존과 직접적인 연계가 되지만 기본적으로 자연의 섭리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외과 수술 역시 인간의 살고 싶다는 욕망이 구현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TokaNG at 2008/02/02 04:52
좀 극단적인 비유를 하자면 '전쟁터에서 자신이 살기위해 적군을 죽이는것과 단순 살인마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엽기살인을 벌이는것의 차이' 이려나요??
둘의 무게가 같다고 느껴지십니까??
이것도, 저것도 결국은 사람을 죽이는거니 어느것이 악한것인지 구분이 안가신다면 할 말은 없는거지만..;;;;
Commented by 리볼버 at 2008/02/02 05:31
기본적인 '욕구의 단계' 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군요. 글쓴이는 저 개를 굶겨 죽이는게 아무렇지도 않은 그냥 예술의 한 욕망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 본데, 단순히 예술을 하고자하는 욕망과 고기를 먹고싶다는 욕망을 비교해서는 안된다는거죠.
즉, 1차적 욕구인 배고프면 먹는 것과 배부르면 그 다음 생각할 수 있는 3차적 욕구(자아실현의 욕구)인 예술을 하는것 자체는 전혀 비교할 대상이 안된다는 말이지요. 애초에 비교될 대상이었으면 먹는것 자체로 예술이라고 할수도 있겠고 예술가라는건 있지도않은 직업이었겠죠.

사람, 욕구, 윤리, 이 세가지중 가장 위에 있는건 욕망(욕구)과 윤리를 선택하거나 제어하던지, 지켜가는 사람 이겠지요. 즉, 생명이 가장 소중한 것 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으로서 1차적 욕구는 삶(생명)을 유지하는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예술이라는 3차적 욕구를 실현시키기 이전에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볼때 윤리적인가 윤리적이지 않은가 하는 정도는 구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사람들이 남에게 보여지는 죽음이 더 악한거라고 생각하는게 아닙니다.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걸 문제시 삼는것이지요. 차라리 어디선가 남모르게 굶어죽는 개였거나 혹은 사냥을 당했거나 자연사 했다면 이렇게 까지 광분하지는 않았을것입니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인위적으로 끌어다가 묶어놓고 '일부러' 굶겨 죽였다는데 있어서 윤리적이지 못한 행동이라 사람들이 화를내고 흥분하는것입니다.

글쓴이 말씀대로 누구나 잔혹한 면은 있습니다. 살기위해 먹고 먹기 위해 죽이니까요. 하지만, 생명은 소중하나 살기위해선 죽일수밖에 없는게 자연의 이치입니다. 글쓴이의 생각은 문제의 본질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으나 너무 본능적인 면에만 치우치지 마시고, 윤리적인 측면도 생각해 보시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뭔가 깨닫게 하려는 저 방법은 좀 잘못된 것 이라고 생각하실수도 있겠지요.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의문점에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사랑의요정 at 2008/02/02 05:54
생존을위해 죽이는거랑 즐기기위해 죽이는게 같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Commented by 엘케인과지크 at 2008/02/02 06:45
하지만 아직도 납득할 수 없는 점은 고기를 먹고싶다는 욕망과 예술활동을 하고싶다는 욕망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자연의 섭리라면 예술을 하고자 하는 욕망은 자연의 섭리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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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먹고 싶다는 욕망은 살기위한 욕망입니다. 살고자 하는 욕망은 생물의 본능입니다. 이 세상 모든 생물의 기본 욕망은 자신의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렇기위해서 생물은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예술은 자신을 표현하기위한 욕망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사상과 느낌을 표현하는 본능입니다. 이것은 남들에게 자신은 이러한 생각과 이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4번의 예가 잔인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1,2 번은 먹기위해, 즉 내가 살기위해 다른 생물을 죽이는 행위입니다. 3번의 예는 저도 뭐라 말하기가 좀 애매하군요 만일 그 아이의 죽음을 촬영하는 사람이 방치했다면 3번또한 비난받아 마땅한 예입니다만 3번의 관점이 그저 독수리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용납되는 행위입니다. 비록 슬프고 잔인할지라도 말입니다.

다만 4번의 행위는 용납이 안되는 행위입니다. 왜냐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과시하기위해서 다른 생물을 죽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예술을 하지 않고도 살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먹어야 살수 있습니다. 이것은 큰 차이입니다. 죽고 싶지 않기 때문에 먹는것과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기위해 한 생물을 죽인다는 것은 전혀 비교대상이 될수 없는것입니다.

만일 주인장님깨선 어떤 사람이 자신의 예술을 위해 주인장님을 스너프 비디오(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촬영하는 비디오) 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이해하실수 있겟습니까?

Commented by 콘돌 at 2008/02/02 07:46
3번의 경우 사진을 찍은 작가는 그 후 그냥 그 자리를 떠났다가 세간의 비난을 받고 그로 인한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우울증으로 자살했습니다. (듣기로는 저 사진에 대한 죄책김이라고도 들었지만..)

식욕으로 인해 일어나는 살상이 일반적으로 쾌락을 위한 살상보다 더 선하다라고는 못하지만, 이미 살상 자체에 목적을 부여하고 그 목적성에 따라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인간이거늘... 물론 모두 같은 살상이라고 말씀하신다면야 할 말은 없습니다만 1,2번과 4번의 살상의 가치 부여 측면에서 전혀 동급으로 성립이 되지 않으며 3번은 좀 특수 케이스인데다가 비극(..)으로 끝난 사건이라 오히려 4번에서 보이는 인간의 잔인함쪽에 더 가까운 사건이겠군요.
Commented by 콘돌 at 2008/02/02 07:48
아 참, 이미 아실지 모르겠지만 혹시 이거 보고 궁금해하시는 분도 있으실 것 같아서...
3번에 사진을 찍은 작가 이름은 Kevin Carter라는 아죠씨입니다.
위에다 쓰려고 생각했는데 잊어버려서;;;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사족을;;;;
Commented by 엠퓨 at 2008/02/02 07:52
재미있게 읽고갑니다.
저는 이글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고싶네요.
Commented by Amber at 2008/02/02 08:14
저도 이글에 동의 -ㅂ-
쓸데없는 명목에 수도없이 죽어가는게 생명인데
예술에 개한마리 죽었다고 난리법썩이라니요
Commented by amalthea at 2008/02/02 08:19
생존을 위해 죽이는 것과 예술(?)을 위해 죽이는 건 물론 다르지요.
허나 최근 인간의 고기섭취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산업발달로 음식이 넘쳐나는 데도 고기를 안 먹으면 먹은 것 같지 않다느니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지요. 고기에 너무 집착합니다.
위에 예로 드신 치킨 백만 마리를 봐도 그런 걸 느낄 수 있지요.
Commented by 엘케인과지크 at 2008/02/02 08:21
Amber// 이 행위가 유명해지지 않아서 제가 몰랐다면 저 또한 신경쓰지 않겠습니다만 제가 알아버리고 이 행위를 알게 된 이상은 비난할수 있는 겁니다.

만일 엠버님 말씀대로라면 엠버님은 이세상 모든 사람들과 생물들에게 불평불만을 할수 없으시는 겁니다. 또한 엠버님 자신이 죽어가신다 해도 말입니다.
Commented by 좌파논객 at 2008/02/02 10:39
살생유택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鷄르베로스 at 2008/02/02 11:05
1~3을 4와 비교한게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무슨 얘기를 하고싶었던건지에는 공감합니다.

저행위를 예술이 아닌 의학적 측면에서 시행했다면 이런 논란은 없었을지도요.
뭐 굳이 실험용으로 쓰이는 수많은 경우를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요?
가장 인간과 가까운 동물인 '개'가 그 대상이란 것도 그중 하나의 이유일테고요.
관련이 없는 얘기지만 개라는 동물 지금은 키우지못하지만 어릴적 아예 끼고살았다 할 만큼(요즘같은 애완견이 아닌 100% 똥개만 키웠습니다) 좋아하는 동물입니다만
호들갑스럽게 개에 관련한 얘기가 나오면 흥분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리 좋게는 보이지 않더군요.
Commented by 강설 at 2008/02/02 11:16
Amber//이중에 누가 쓸데없는 명목으로 죽어가는 생명에 관해서 무시하고 개에 관해서만 얘기하는 분이 있었나요? 우리눈에는 수많은 개중의 한마리겠지만 개한테는 자기인생 전부입니다 -_-; 개와 사람의 가치를 동등하게 놓을수없겠지만 그런식이라면 사람이 하나 죽는것도 아무일도 아니겠네요. 60억이나 되니까 말이죠.
Commented by 알리바바 at 2008/02/02 11:20
그러니까 여흥으로 죽든 말든 깝치지 말고 찌그러져 있으란 거군요.
무차별을 사랑하시는 모양인데 왜 그 생명의 공평함을 설명하고자 하는 글에 해충이나 식물은 포함시키지 않으셨습니까? 개념도 없으신 양반.
Commented by 페이옌 at 2008/02/02 11:21
鷄르베로스/묶여서 굶어죽어가는게 '개'라서 사람들이 급흥분하고 왈왈 거리는게 아니죠. 저 짓의 의미는 굳이 개가 아니라도 완성됩니다. 고양이를 묶어도 될테고 사람을 묶어놔도 완성되겠죠. 그렇잖습니까?
Commented by Duke at 2008/02/02 11:27
하지만 아직도 납득할 수 없는 점은 고기를 먹고싶다는 욕망과 예술활동을 하고싶다는 욕망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전 이 말씀이 굉장히 와닿습니다. 예술에 대한 욕망이라는게 얼마나 강렬한지 말로는 들어봤지만 공감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격렬한 예술에대한 욕구의 표현을 결과물로서 살짝 옅보기도 버거운 일반인일뿐입니다. 개잡는 '자칭' 예술을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과연 그래서 정의가 아닌 것인가. 정의롭지 않음 맞아야하는가에서는 쉽게 판별할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드네요. 본능이면 괜찮다는 것은 좀 위험하지 않나 싶구요.
Commented by Bombay at 2008/02/02 11:58
그렇게 예술에 대한 욕구가 강했으면 그냥 자기가 줄에 묶여 굶어죽는 연출을 했음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Commented by NHK에 at 2008/02/02 12:10
재미로 죽이건 예술을 위해 죽이건 먹기위해 죽이건 동물입장에선 죽임 당하는건 마찬가지죠. 다만 그걸 인간관점으로 이 이유로 죽이는건 정의롭지못하고 저 이유로 죽이는건 덜 정의롭지못하다를 나눠논것뿐. 결국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위선이라고도 할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주객관적으로 보자면 위선이라도 인간들 자신에겐 의미있는 위선이겠죠. 인간은 신이 아니니까요.
Commented by apzero at 2008/02/02 12:18
밸리에서 보고 왔습니다만, 이런게 논란이 됐었군요.

저로선 개 한마리가 어떻게 죽든지 아무래도 좋은 일인데,
이렇게 여러 모로 반응하시는 분들을 보면 신기합니다.
Commented by 병맛쯔이란 at 2008/02/02 12:42
이것이야말로 한번 생각해볼만한 '다른 사이드'의 알찬 개념글인것이란거제요.
어쩌면 위선과 위악이 갈리는 여러 지점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 인터넷언론 보신탕반대단체 탐사취재한 기자 말마따나
생명외경사상이라는것은 결국 허점이 많을수밖에 없고, 사실, 생태계를 위해서라면 인간이 전멸하는게 가장 명쾌한 해답이 될수밖에 없습니다.
Commented by 병맛쯔이란 at 2008/02/02 12:42
솔직히, 저 논쟁을 보면서

모 막장 언더그라운드 만화가의 초기작까지 생각나버린 저는 막장일까요 정상일까요?
Commented by 병맛쯔이란 at 2008/02/02 12:51
하여튼, 4번이 확실한 문제가 되는이유는
설령 모순같은걸 비꼬아 대는게 목적이었다고 해도 그것을 표현할 수단이 고의적이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싶습니다
Commented by J H Lee at 2008/02/02 12:51
글쎄요..

개를 굶겨 죽인다는것 그것도 타인에게 굶겨 죽는 장면을 보여주겠다는 것은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행위가 아닌가 싶습니다.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행위가 생존을 위한 먹이사슬과 동급이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눈여우 at 2008/02/02 13:50
웬만한 이야기는 다른 분들이 다 하셨으니 넘어가겠지만 3번 사진에 대해서는... 그 아이는 실제로는 그냥 지쳐 있었던 것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굶어죽기 직전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고요. 이것도 예전 어디 이오공감에서 본 것 같습니다만.
Commented by 나타라시바 at 2008/02/02 14:34
확실히 어떤 생명을 죽여도 되는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이 인위적인 잣대에서 판별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이 글에서 비교의 대상이 된 육식하는 하이에나 등은 인위적인 잣대가 아니라 "먹이사슬" 이라는 생태계의 법칙이 발견되어서 가만 놔두는 거죠 -┏

굳이 인위의 잣대를 얘기할 수 있는 것은 2번일텐데, 설마 2번의 살육 방식이 인위성이 나쁘게 적용되는 얘라고 하실 분이 계시려나요?
뭐 사실 동물들은 M기질이 있어서 고통받으며 죽는 것을 더욱 좋아한다는 엽기적인 사실이 밝혀진다면 모를까 총으로 한 번에 죽이는 것을 인위성이 나쁘게 적용된 예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생태계를 위해서는 인간이 없어지는 게 낫다고 하시는 등 마치 "인간의 행동은 어떤 식으로는 자연에 영향을 끼치지 않아야 한다. 어차피 똑같이 영향을 끼치는 이상 다 나쁜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신 듯 한데, 그런 주장도 사실 무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따지고 보면 인간도 자연의 일부니까요 =_=; 인간과 자연을 양분하는 것은 너무 좁은 생각이며 설령 그렇게 하려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 인간이 모를 뿐이지 우리도 먹이사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을 수도 있고 생태계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수도 있죠. 인간을 생태계의 법칙과 완전히 동떨어지는 존재라고 결론짓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물론 인간은 기본적인 생태계의 법칙을 넘어서 과도한 욕심, 또는 잘못된 욕심을 추구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 욕심의 구체적인 속성이 문제될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 옷 한 벌을 위해 수백마리의 동물을 죽이는 것이 옳은가 아닌가를 논의하는 것은 생태계의 법칙을 넘어선 과도한 욕심이 의심되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논할 가치가 있지요.

여기서 말하는 4번의 예도 비슷한 예로 볼 수 있을텐데, 4번이 비판받는 이유는 병맛쯔이란님 말씀처럼 어떤 인위성을 비꼬려 했으면서 결국 그 수단이 인위적이었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감독이 나치의 만행을 고발하기 위해 나치의 유대인 집단 학살 영화를 찍었는데, 알고보니 그게 진짜 나치가 행한 것처럼 사람들을 죽인 스너프 필름이었다면? 그것은 고발도 뭣도 아닌 그저 나치의 만행을 되풀이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저것도 인위성을 고발한 게 아니라 또 하나의 인위성을 만든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의 본질을 보기보다는 그저 "어떤 식으로든, 얼마만큼이든, 인간이 생태계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틀려먹은 거 아니냐?" 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네요. 앞서 말했듯이 그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어차피 인간과 자연을 완벽하게 양분할 수 없는 이상, 문제가 되는 것은 인위성의 속성에 관한 문제이지 인위성 자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거나 저거나 다 피장파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Commented by Mwida at 2008/02/02 15:06
뭐랄까 비유라고 드신 것들이 전혀 비유가 될 수 없는, 주인장님의 주장의 정당성을 위해 끼워 맞춰넣은 비유라 생각합니다.
주인장님은 그렇다면 살기 위해 먹는 것(보신을 위해 먹는 건 생존과 다르다 생각합니다.)과 재미로, 그렇죠 예전에 있었던 일이 있죠. 공사장에서 쓰이는 못총으로 고양이를 공격하는 것이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마치 그런 논리는 너도 더럽고 너도 잔혹하니 개를 굶겨 죽이던 전시를 하든 닥쳐라 라는 논리로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Commented by 퓌퓌퓌 at 2008/02/02 15:11
밸리타고 들어왔습니다,
글쓰시면서 어딘가 핀트가 어긋나있다고는 생각 안드셨나요? 글쓴님딴에는 적절하다고 함께 붙인 비유인듯하지만요 담고있는 내용이 전혀 다르군요.
Commented by 나타라시바 at 2008/02/02 15:22
만약 그 작가가 정말 인간의 위선을 고발하려고 했다면, 정말 사실적인 개 인형을 하나 만들어서 그 녀석이 처참하게 굶어죽는 것처럼 보여주거나, 아니면 진짜 개를 훈련시켜서 정말 죽어가는 것처럼 연기하게 했다면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개 모양을 한 무기질의 인형, 또는 주어진 연기를 할 뿐인 개에게 사람들이 측은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면 확실히 의미있는 예술이 될 수 있었겠지요.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영화감독이나 보통의 예술가들이 취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물론 저 예술가는 자기가 비판받는 것도 곧 인위성을 표현하는 것이라며 자기 예술이 성공했다고 낄낄댈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자기 주장이 씨도 안 먹히자 이건 사실 낚시였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으며, 심지어는 어떤 사람들에 대한 '모욕' 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모욕이란 곧 영화감독이나 소설가 등 가상의 미디어를 만드는 예술가들에 대한 모욕이죠. 결국 저 예술가가 훌륭하다면 공포 영화를 만드는데 실제 사람을 죽이기 않기 위해 CG 기술을 적용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행위를 지향하지 않고 가상의 기술력에 의존하려는 겁쟁이들" 밖에는 되지 않을테니까요.

왜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려는 감독이 굳이 CG와 분장 기술을 이용하여 총탄을 맞고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일까요? 진짜 배우에게 총을 쏴서 그 배우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것보다 더 뛰어난 메시지 전달 방식은 없을텐데요? 사실 윤리적인 측면을 떠나서, 그렇게 가상의 효과를 통하는 것이 앞서 말한 "인위성을 되풀이하지 않고 인위성을 표현한다" 는 면에서 예술적으로도 더 뛰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결국 진짜 개를 굶겨죽인 그 예술가의 작품은 윤리적 정당성과 과학적 당위성 이전에 예술적으로 그 방법을 잘못 잡은 실패작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뭐랄까 작가 딴에는 자기 이웃의 귀여운 애완견은 좋아하면서 평소 길거리에서 굶어죽어가는 똥개들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는 사람들의 위선을 고발하려고 한 것 같은데, 그러려면 위에서 제가 말한 것 같은 방법을 써서 '개가 죽는 상황' 은 만들지 않되 '사람들의 관심' 만 끌어와서 그 관심이란 것이 얼마나 변하기 쉬운 건지를 말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저건 어떤가요? 어쨌든 사람들의 관심은 모았는데, 문제는 저 작가가 애당초 죽지 않아도 되었을 개를 잡아다가 진짜로 죽여버렸다는 것입니다. 결국 진짜로 개가 죽은 상황에 관심을 준 사람들은 '바람직한 행동' 을 했기 때문에 비판받을 건덕지는 없어지고, 그저 작가만이 '자기가 문제시하려는 상황의 원인을 또 하나 제공해버린 나쁜 놈' 이 되고 만 것이죠. 이렇게 보니 참 작가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 같네요.

제가 이 글에 단 맨 처음 덧글에서는 4번에 대한 비판의 이유를 "예술성의 모호함" 으로 들었지만, 이렇게 따지고 보니 4번은 그 모호한 예술성조차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이 분명한 실패작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예술에 있어 생명을 죽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순수하게 예술적인 측면만으로 설명해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대연 at 2008/02/02 15:44
예술이란 이름아래 개 한마리 굶겨 죽이는 걸로 왜 이 난리법석이냐니요. 셀 수 없이 많은 가축들이 인간의 식량이 되기 위해 죽어 나가는 것 또한 세계적으로 여태까지 난리법석인 일이지 않나요? 그건 채식주의자 뿐 아니라 가축을 도살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충분히 문제시 됐던 일입니다. 그런데 글 쓴분은 마치 전세계적으로 자행되는 끔찍한 도살행위는 묵살 되면서 개 한마리 굶겨 죽이는건 왜 그렇게 난리법석을 떠냐는 식으로 쓰시고는 그런 세계적인 도살(학살?)행위를 자신이 앞서 잔혹한 행위임을 고발하는 듯이 쓰셨군요.(그게 본래 의도와 다르더라도 말입니다.) 왜 이리 난리법석이냐는 글쓴분 역시 이 작은 난리법석에 동참하는 또 다른 한명이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Soundwave at 2008/02/02 22:29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mmented by Skaliety at 2008/02/12 02:29
님 이제 새글좀 쓰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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