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한 것인가?

얼마 전 필름 스캔을 하려고 학교안에 미디어 센터에 찾아갔었다. 공식적으로는 모든 학생들이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장비는 아니었기에 이번 한번은 쓰게 해주지만 다시는 오지말라는 말을 직접 입으로는 하지 않았으나 얼굴 표정으로 느끼에 해주며 관리하시는 분이 한대의 거대한 컴퓨터 앞으로 나를 인도하였다. '맥 쓸 줄 알아요?' 라고 물어보며. 나는 듣던중 반가운 소리라 밝은 표정으로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컴퓨터가 켜지는 모습을 지켜본 나는 아연 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족히 10년은 되어 보이는 구제 화면이 나를 반겨주었다. 이것저것 살표보니 정말 10년은 된 300Mhz PowerPC 모델이었다. 램은 무려 64MB. 포토샵 5.0이 깔려있어 그것으로 작업을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현재의 컴퓨터와 비교되는 수치의 차이에 비해서 그 컴퓨터가 해내고 있는 작업의 종류와 속도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10배 빠른 cpu와 100배 큰 메모리를 가진 내 컴퓨터에 있는 최신의 포토샵이 10년 전 컴퓨터보다 그다지 훌륭한 일을 하고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의 최신 컴퓨터는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확실히, 양적 팽창은 질적 팽창과는 큰 관련이 없는 것 같다.
반추해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게 즐긴 게임은 286컴퓨터로 했던 원숭이섬의 비밀이다. 혹자는 상대적으로 빈곤한(물질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어린시절의 미화된 추억이라고 이야기 할 수 도 있지만. 최근에 다시 해본 원숭이섬의 비밀은 여전히 재미있다. 더욱 놀라운것은 저해상도의 알아보기 힘든 2d그래픽은 현대의 어설픈 상자들이 움직이는 웬만한 게임의 3d그래픽보다 확실히 아름답다! 과연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은 상자들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위해, 더 많은 광원들을 처리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본질적 의미에서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는 잊어버리게 된 것은 아닐지.

성격상 물건들을 잘 버리지 못해 헐값이 되어버린 구형 컴퓨터를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다가 결국은 내버리면서 그래도 cpu만큼은 버리지 못하고 남겨놓다보니 오래된 시피유가 하나 둘 책상 서랍속에 쌓인다.

그래도 가장 최근까지 쓰던 cpu다. 2002년산이고 6년이나 지났지만 2Ghz나 되는 클럭 스피드를 자랑한다. 지금은 중고가는 커녕 뭐 줘도 안갖는 cpu가 되어버렸지만. 현재 cpu랑 모양도, 성능도 별 차이 없다.

대학 입학하면서 구입했던 컴퓨터의 cpu다. 600Mhz의 셀레론. 당시는 정말 엄청난 스피드였다. 앞서 언급했던 맥보다 두배나 빠르다. 하지만 지금은 역시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다.

이건 찾아보니 95년도 제품이다. 펜티엄으로 120Mhz로 동작한다. 저 깜찍한 쿨러 사이즈를 보라. 지금의 거대한 쿨러와 비교해보면 얼마나 소박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지 알 수있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 CPU도 최첨단의 CPU가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을 다 할 수 있다. 아마 지금까지 언급한 cpu중에서 가장 고가로 구입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역시 중고가를 측정할수 없는 쓰레기에 가깝지만 이정도 되면 기념적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 이전에 쓰던 cpu들은 집에 있는 관계로 촬영하지 못해 아쉽다. 486DX와 Cyrix의 386칩 등....
하여간, 아찔할정도로 팽창한 처리속도 만큼, 우리가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으로, 업그레이드신의 강림을 애써 부정해본다.

by 봉봉 | 2008/02/29 01:08 | Category 0 | 트랙백 | 덧글(2)

Contax G1 - 모호함의 미학

근육질의 덩치를 자랑하는 시커먼 DSLR을 사용해 왔지만 무자비할정도로 뛰어난 기계적 성능에 비해 상대적으로 실망스러운 이미지퀄리티와 감성의 결여로 인해 어쩔수 없이 다시 필름 카메라로 복귀를 결심하고 구입했다.

Contax G1

그 이름도 유명한 Contax의 현대적인 RF(Range Finder)카메라 G1이다. (저 아름다운 T* 마크를 보라!) RF란 SLR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SLR은 렌즈로 들어온 화상, 즉 필름에 찍힐 화상을 직접 보면서 촬영하는 반면에 RF는 눈으로 보기위한 구멍이 따로 있어 필름에 찍히는 것과 내가 보는것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초점이 맞았는지 확인 할 수 도 없고 프레임이 어떻게 잡혔는지도 매우 부정확하다. 한마디로 아주 불편한 방식.
그렇지만 RF의 장점이 있다면 SLR에 비해 매우 간단한 구조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작고 가볍고 단순하다. 단순하기 때문에 그만큼 이미지의 질에 집중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하여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유명한 많은 사진가들이 옛날식 RF카메라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예를들면 라이카의 전설적인 M시리즈 같은 모델.
하여간 필름카메라중에서도 구식인 RF방식을 사용한 G1이지만 그 중에는 매우 드문 현대적 모델이기 때문에 자동 초점, 자동 노출, 연사, 뷰파인더 보정 등 첨단(?) 기능을 제공한다. 말하자면 최첨단 기능의 자전거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카메라와는 멀고 먼 카메라다. 찍기전에도 내가 정확히 뭘 찍는지 (프레임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초점이 정확히 맞았는지도 모르고 찍은 후에도 제대로 찍힌건지 알 수가 없다.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찍은게 무엇인지 알 수 가 있다. 하지만 불편한 만큼 장점도 있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는 것. 디카는 일단 찍고 본다. 맘에 안들면 다시찍는다. 마음에 들때까지. 하지만 필름은 찍기 전에 생각해야한다. 한컷 한컷이 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찍고 난다음에도 잘됐는지 잘못됐는지 확인을 할 수 없다. 찍기 전에 모든 것을 생각하고 예상해야 한다. 이건 매우 큰 차이라고 본다. 특히 사진 실력을 늘리는데 있어서.
하여간 아직까진 훌륭한 결과물을 낼정도로 찍어 본 것은 아니지만 내 주력 기종으로서의 활약이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오늘 발견한 Mac OS X의 이미지 캡쳐 아이콘과 나의 G1. 역시 애플은 뭔가를 아는 회사다.


by 봉봉 | 2008/02/13 15:43 | Category 0 | 트랙백 | 덧글(5)

태어나서 한번도 고기를 먹지 않은 자, 나에게 돌을 던져라

개가 굶어죽는게 예술작품?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1. 아프리카의 한 사바나 지역. 하이에나 한 무리가 얼룩말을 사냥한다. 발빠른 대부분의 얼룩말을 도망쳤지만 지능적인 하이에나의 목표가 된 한 어린 얼룩말은 결국 잡히고 만다. 덩치에서 열세인 하이에나들은 얼룩말을 단번에 제압할 힘이 없다. 따라서 숨통도 끊지 못한다. 그냥 주둥이가 닿는곳을 물어 뜯을 뿐이다. 한동안 뛰어다니며 저항하던 얼룩말은 더 이상 저항이 소용없음을 느끼고 자리에 눕는다. 하이에나들은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식사시간의 시작에 얼룩말에게 죽을 틈 도 주지 않은 채 게걸스럽게 연한 부위부터 뜯어 먹는다. 조금씩 뜯겨 나가는 살점과 피 덕분에 얼룩말은 자신의 몸이 점점 줄어 드는 것을 느끼고 그와 함께 생명과 의식또한 작아져감을 느낀다. 마지막 남은 의식으로 희번득 대는 눈 속으로, 멀리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최후를 지켜보는 어미 얼룩말이 들어온다.

2. 시골의 한 도살장. 수백마리의 소가 죽음을 기다린다. 그 중 한 소가 긴 통로를 지나 어떤 방에 도착한다. 무언가 불안한 느낌이 들지만 그게 뭔지는 잘 모른다. 그 순간 어떤 쇠막대기가 자신의 정수리를 겨누고 있음을 느낀다. 작은 쇠공이 빠르게 쇠막대기에서 발사 되고 소의 이마를 관통하지만 소는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는 암흑. 그리고 그 뒤에는 오로지 가장 손쉬운 최후를 맞기 위해 일생을 2미터길이의 방에서 앉지도 못하고 살아온 수백마리의 소들이 작은 쇠공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다. 아니, 수만마리 수천만 마리가 기다리고 있다.

3. 또 다시 아프리카. 세살쯤 되어보이는 흑인 아이가 흙바닥에 앉아있다. 아주 오래 굶었는지 가시같은 팔과 다리가 몸통에 매달려 있고 어울리지 않는 볼록한 배만 도드라져 보인다. 아이는 파리를 쫓을 힘드 없는지 수많은 파리들이 아이의 얼굴 위를 기어다닌다. 그리고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독수리 한마리가 앉아서 아이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4. 코스타리카의 한 전시장, 개 한마리가 벽에 묶여있다. 멀찌감치 밥그릇이 있지만 줄 길이가 충분하지 않아 밥그릇에 닿진 않는다. 개는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서서히 굶어 죽어간다.

당신은 이중에 가장 잔인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나에게는 놀라운 사실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의 세개에 대해서는 별 의견이 없지만 네번째 사건에 대해서는 격렬한 반감을 드러냈다. 역사상 단 한번 일어난 한마리의 가여운 개의 죽음과, 매일매일 벌어지는 수십만 마리의 학살의 승부는 한마리 개의 압승으로 결론을 맺은 것이다. 왜일까?

인간은 필연적으로 다른 개체의 죽음 위에서 밖에 살 수 없는 동물이다. 일단 잡식성이지만 일반적으로 고기를 더 좋아하고,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남을 죽일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살을 잘라 먹는 수 도 있겠지만 -만화에는 그런 사람도 등장하긴 하지만- 위대한 김구 선생님 조차도 그러한 일은 포기했다. 남을 죽이는 일을 죄악으로 생각해서 채식만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긴하다. 하지만 그래서? 식물은 생명체가 아닌가? 어떤 귤나무가 있다. 그 귤나무의 삶은 목적은 단 하나 열매를 맺어 씨를 뿌리기 위함이다 귤나무의 삶은 열매 맺는데 최적화 돼있고 그하나의 목표를 위해 1년을 살아간다. 하지만 매번 사람은 귤을 아무 대가 없이 맺는대로 냉큼 따가고 귤나무는 또 열심히 내년에 약탈당할 열매를 맺을 준비를한다. 이것은 잔인하지 않은가?

나는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비방할 생각이 없다. 나도 고기를 무척 좋아하며, 고기를 먹으면서 어떤 종류의 죄책감도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인간이기에 운명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잔혹성을 부정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월드컵 때 하루 평균 치킨 주문량이 100만 마리가 넘었단다. 다시말하면 매일매일 한국에서만 100만마리 이상의 닭이 죽음을 당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잔혹 행위를 무시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영혼의 고귀함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내가 저지르지 않은 잔혹 행위에는 가차없는 비방을 가한다. 한마리의 개를 죽인 코스타리카의 예술가 같은 사람을. 먹는 행위는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괜찮고 예술은 안된다? 먹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기적인 것 아닌가? 비교하자면 오히려 예술이 이타적 가치를 품고있지 않나? 좀 자기 중심적이고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다시 얘기하지만, 나는 고기를 먹는 사람의 잔혹성을 비방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스스로의 잔혹성을 그렇게 부정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앞서 말했지만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잔혹한 동물이다. 하이에나 처럼.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PETA(동물을 인도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지지한다.


by 봉봉 | 2008/02/01 15:26 | Category 0 | 트랙백(3) | 핑백(1) | 덧글(48)

클로버 필드 (Cloverfield) - 영화같은 게임? 게임같은 영화?


예술의 고하를 논하기는 힘들어도 시대를 선도하는 예술 장르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20세기 초반 미술계를 휩쓸었던 미니멀리즘 내지는 모더니즘이 현대의 건축에 이르러서는 보편적이 미감으로 자리잡았다. 좀더 대중과 가까운 예를 들자면 영화 연출에서 개발된 카메라 기법이 죄다 현대 게임에서 똑같이 복제 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한 편의 영화와 같은 게임'이라는 말을 게임에 대한 최고의 칭찬으로 사용할만큼 영화는 게임에 대해 선행 문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본 영화 '클로버필드'를 기점으로 그러한 고정관념은 버려야되지 않나 싶다.
클로버 필드에서의 장면 연출은 철저히 게임적-특히 1인칭 슈팅 게임-이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 음향은 철저히 주인공의 시점에서 이루어진다. 감독은 이러한 연출을 등장인물들이 캠코더로 직접 찍은 영상이라는 설정으로 가능하게 한다. 이 영화의 모든 영상은 캠코더 영상이므로 심지어 배경 음악 하나 없다. 음.... 그렇다 '블레어 위치' 생각을 안 할 수 가 없다. 하지만 이 영화를 블레어 위치의 아류로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일단 클로버필드는 훨씬 발전했으며 더 잘만들었다. 그리고 또한 감독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블래어위치에 비해 훨씬 명확하게 알고 있다. 바로 관객에게 '한편의 게임을 플레이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관객은 그 거대한 재앙의 한복판위에 던져져, 정말로 살기위해 등뒤에서 쫓아오는 괴물들로 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칠 뿐이다. 하늘에서 롱테이크로 괴물의 아름다운 동작을 느긋하게 감상할 여유 따위는 주지 않는다. 관객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정신도 없이 생존본능에 따라 등인물들과 함께 도망칠 뿐이다. 그러한 충격과 공포. 그게 바로 이 영화의 전부다.
이 영화는 감히 실험영화라 말하고 싶다. 아무나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는게 아니다.  그 이유인 즉슨 극도로 흔들리는 핸드헬드 영상 때문에 화면 멀미(Motion Sickness)에 대한 저항력이 웬만큼 강하지 않는 한 이 영화는 어지러움과 구토를 일으킬 수 있다. 실재로 영화의 반을 눈을 감고 있던 사람이나 보다가 나간 사람도 있을정도. 그런 이유 때문인지 실재로 이 영화에 대한 평은 아주 좋은 편이 아니긴 하지만. 감히 말하고싶다. 개조심 팻말을 미처 보지 못한 채 남의 집 담벼락을 넘다가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달음질쳐 쫓아오는 개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전력질주로 도망쳐 본적이 없다면, 그리고 그 폭발하는 아드레날린의 느낌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라고.


이글루스 가든 - 내맘대로 영화해석

by 봉봉 | 2008/01/27 23:58 | 부스러기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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