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영화

시대정신 (Zeitgeist) - 어릴적 꿈꾸었던 유토피아








많은 소년들이 그렇듯이 내 어릴적 꿈은 과학자였다. 뭐 절반은 이루어진 셈이다. 물론 내가 꿈꾸었던 과학지는 지금과는 동떨어진 것이었지만... 어렸을적엔, 정치가와 변호사는 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시절엔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른들이 좋아하는 그 사람들은 세상에 전혀 필요가 없는 인간들이었다. 자라면서, 흔히 얘기하듯이 머리가 커지면서 그 사람들이 무슨일을 하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운전을 하다 접촉사고가 일어나서 상대 운전자가 뒷목을 잡으며 막무가내로 삿대질 부터 해댈때 나는 막연히 변호사가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겠구나 라고 느꼈고, 내 월급에서 세금이 뚝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고, 내 돈 빼앗아 가서 쓰는 정치가를 잘 뽑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느덧 이 체제에 익숙해진 나는 변호사, 정치가. 금융기관들이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더 올바른 생각을 할 수 도 있다는 것을 영화 '시대정신(Zeitgeist)'은 이야기한다. 맞다. 정치가, 변호사, 금융기관, 군인은 우리 사회가 다같이 행복한 삶을 사는데 전혀 필요가 없는 인간들이다. 오히려 없을수록 이득이다. '시대정신'은 그런 원초적 유토피아를 꿈꾼다.



이어지는 내용

by 봉봉 | 2008/11/17 23:50 | 부스러기 | 트랙백 | 덧글(1)

시간을 달리는 소녀 (時をかける少女) - 삶의 변주와 회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본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의미 깊게 쓰여서 극의 전개에 따른 곡의 배치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곡의 전개를 생각하면서 다시한번 감상하는것도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글은 영화 소개 사이트의 시놉시스 정도의 스포일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놉시스라고 하는 것들이 영화 대부분의 내용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스포일러를 제외한 영화 평은 글의 뒷부분에 따로 적었습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Goldberg Variation) BWV988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가장 매력적인 작품중에 하나로 건반악기(당시에는 피아노가 아직 발명되기전)를 위한 변주곡이다. 이 곡은 하나의 주제(Aria라 명명된)와 이 주제에 바탕을 둔 30개의 변주와 그리고 한번 더 반복되는 Aria로 구성되어 있다. 30개의 변주는 매우 다양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매우 치밀하게 수학적으로 계산된 진행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1. Aria


"Goldberg Variations(J.S. Bach) - Aria - Glenn Gould(Piano)"

<G장조 3/4박자. 이후 변주될 기본이 되는 주제를 차분한 느낌으로 제시한다>



마코토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늦잠을 자 학교에 가까스로 지각을 면하거나, 가끔 쪽지시험을 꽤나 망치기도 하지만 방과 후 반친구들과 야구를 하면서 어제 푸딩을 빼앗아 먹은 동생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는 평온한 일상을 훌륭하게 살아가는 소녀다. 그러던어느날 반 급우들의 노트를 제출하러 과학실에 갔다가 우연히 뜻밖의 능력을 얻게 된다. 바로 시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것.거기서 마코토의 삶의 첫번째 변주가 시작된다.



2. Variations


"Goldberg Variations(J.S. Bach) - Variatio 8~14 - Glenn Gould(Piano)"

<Aria에서 제시된 주제의 베이스 라인을 중심으로 카논, 푸게타, 토카타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가 이루어 진다. 변주들은 힘차거나 장엄하거나 혹은 슬프기도 한 다양한 분위기로 이루어 진다. 마지막 제 30변주에는 그 당시 유행하던 민요 두곡의 멜로디가 인용되어 있는데, 이 곡의 가사내용은 '나는 오랫동안 너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돌아오라,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다오'라는 내용이다.>


신묘한 시간 이동(Time Leap) 능력을 얻은 마코토의 삶은 흥분 그 자체가 된다. 공중에서 한번 풀쩍 뛰어주면 몇 시간 전이라도 돌아갈 수 있다. 쪽지시험을 망쳤다면 한시간 전으로 돌아가 똑같은 시험을 한번 더 보면 될 뿐이고. 용돈을 다 써버려도 용돈 받는 날로 돌아가서 한번 더 받으면 그만이다. 마코토는 점점 일상의 소소한 부분을 조금씩 다르게 연주하여 삶을 더 완벽하게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능력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마코토는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 불행을 막으면 그 불행이 다른 누군가에게 대신 일어나고 도와주려던 일이 상처가 되고, 심지어 내가 삶으로써 다른사람을 죽일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영영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코토는 '다시 모든것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면' 이라고 외치게 된다.

3. Aria da capo (또 다시 아리아)

"Goldberg Variations(J.S. Bach) - Aria da capo- Glenn Gould(Piano)"

<30개의 변주에 이어 처음의 아리아가 한번 더 반복된다>
모든것을 바로잡기 위해 단 한번의 기회가 남았다. 마코토는 이를 위해 시간을 뛰어넘는 대신에 거리를 달린다. 예전에 그랬듯이...




오랜만에 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언제부턴가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끊었는데 아마도 시류에 편승한 저질 애니와 상업주의에 물든 우려먹기 애니들이 메인스트림으로 자리잡은 것에 진절 머리가 나서가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은 애니를 본다기 보다 영화를 보는연장선에서 뒤늦게 보게 되었던 것인데, 마지막 장면 이후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때까지 시선을 거두기 힘든 감동을 주었다.아직도 이런 참신한 작품이 나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호소다 마모루는 신예 감독으로 토에이에서 수석애니메이터로 일했었는데 그 때문인지 인물들의 동작, 표정, 배경등 기본적인 애니메이션의 퀄리티가 매우 뛰어나다. 첫장부터 배트로 야구공을 치는 모습이 범상치 않다. 그 뿐 아니라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컷 간의 여백을 잘 활용하여 정곡을 찌르는 연출도 훌륭하다. 정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일본 성우들의 실력이 날이 갈수록 하늘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다는 것이다.애니메이션의 연기라는것이 특성상 어쩔 수 없이 과장되고 그런 과장속에서 대사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그것이 비현실감을 느끼게 하는데, 본 작품은 캐릭터와 상황을 잘 살리면서도 극도로 자연스러운 연기가 돋보였다.
전반적인 극의 분위기인 파란 하늘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음악도 몰입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하지만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극의 전개를 배치시킨 감독의 재기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류의 시간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따지기 시작하면 애매하고 복잡한 논리적 문제들이 있게 마련인데 사실 그런 것들은 소소한 것에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SF라기 보다는 평범한 고등학생들의 성장영화로 보는 것이 더욱 합당한 접근일 것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후회되는 순간이 있다. 그렇다고 매번 그 순간을 다시 살아서 완벽하게 넘어갈 수 가 있을까? 영화에서 주는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에 완벽한 해답이란 없을것이고 완벽해 질 때까지 고치고 고치다 보면 삶에 전혀 진전이 없을 것이다. 매번 하는 후회는, 다시말하면 그 상황에서의 최선이었고, 그 최선들이 모여서 삶은 한 발짝씩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아닐까.



이글루스 가든 - 내맘대로 영화해석

by 봉봉 | 2008/01/09 10:00 | 부스러기 | 트랙백 | 덧글(0)

色, 戒 (색, 계)


머리가 복잡할때 보면 생각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해지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보고나면 심란해지는 영화가 있다. 보는동안 즐겁고 신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보는 동안 뭔가 불편하고 심지어 괴로운 영화도 있다. '색, 계'는 말하자면 후자에 속하는 영화고, 이상하게도 후자에 속하는 영화들은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
오랜만에 혼자 일부러 찾아가서 본 영화인 만큼 꽤 기대했던 영화인데 실망스럽지 않았던거 보면 괜찮은 영화 아닌가 싶다. 오히려 누구랑 같이 봤으면 그 긴 러닝타임이 부담스럽게 느껴졌을지도. '음식 남녀'와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이안감독에게는 괜찮은 인상을 받고 있었는데 이번 '색, 계'에서도 흔하디 흔한 사랑 얘기를 담담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뭔가 영화의 주제에 대해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 놓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쓰려고 보니 내 식견과 감성과 경험의 해상도로 그려내기에는 너무나 미묘하고 아슬아슬하고 불명확한 이야기인지라 결국 아무 말도 쓰지 못하게 됐다. 이런 류의 영화는 직접 보고 스스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다. 한가지 동기부여를 하자면 내가 본 극장 상영작중에 최고로 야하다는 것 +_+.
양조위야 전부터 좋아하던 배우지만 이번 영화에서 특히 그 특유의 '눈빛으로 모든것을 말하는' 연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또한 가공할만한 20세기적 매력을 폭발적으로 뿜어내 관객을 사로잡아버린 신예 탕웨이의 캐릭터는 비단 감독의 능력으로만 만들어 진 것은 아닐것이다. 1940년대의 위태로운 시대상과 그에 대비되는 상류 사회의 고풍스러운 삶을 묵직한 피아노 선율과 절제된 영상으로 충실히 담아내고 있는 점도 칭찬할만하다.
'색, 계'는 일반적으로 아무한테나 선뜻 추천할 수 있는 종류의 영화는 아니지만, 살다가 가끔씩 그리워지는 불편함과 약간의 고통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마약과 같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by 봉봉 | 2007/12/28 05:32 | 부스러기 | 트랙백 | 덧글(2)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